나는 책을 읽으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즐거우며,
또한 나의 이야기는 나의 저서 속에 들어 있다.
그리고 친구로부터 온 편지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더욱 강하지만,
물론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편이 가장 바람직하다.
마주 앉아 친구의 말에 대꾸하는 것은 글을 쓰는 이상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친구란 눈과 마음, 혀, 손이나 마찬가지다.
반재로 친구끼리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에는
서로 떨어져 있을 때처럼 상대방이 선명하게 들여다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서로 떨어져 있으면 친구에 대한 생각으로
그 모습이 더욱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정은 현재 눈앞에 실재하기보다 떨어져 있을 때
더욱 강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떨어져 있으면 피차에 오늘 밤에는 뭘 하고 있을까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피차의 서재 광경도 머리에 그려보며, 또
서로의 직장도 머리에 떠올리고 서로 만날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되면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된 우정은 서로 상대방이 자기에게 세계 전체로 생각되어,
자기가 친구에 대해 갖는 일체를 친구는 자기에 대해 갖는
일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나는 비록 서재 속에 갇혀 있더라도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쳐 주는 일이다.
산해진미도 식탁에서 혼자 먹으면 시들하고,
지식이나 지혜도 혼자만 알고 남에게 가르치지 말라는 조건부라면
나는 그런 지식이나 지혜는 거부할 것이다.
루실이아스가 나에게, 친구 아무개한데서 편지가 왔지만
내가 편지를 받았다는 얘기는 그에게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나한데 한 말은 이것이 전부 였지만, 그는 친구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이 말 한마디 속에는 친구를 친구로 인정치 않는 이중의 태도가 엿보인다.
말로는 친구라고 하면서 전혀 마음을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
우정은 경계가 있을 수 없다.
친구가 되기 이전이라면 상대방을 얼마든지 의심하고 이모저모로
따질 수 있지만, 일단 친구로 삼은 이상 의심이나 질투를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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